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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0. 10世 〉24. <부정공>삼탄부군휘대춘유사(三灘府君諱大春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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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부정공>양벽정유허기(漾碧亭遺墟記)휘대춘(諱大春)
漾碧亭遺墟記 吾鄉古有富有縣縣中多臨觀之美故又或稱小江南而小江南惟漾碧亭爲第一即吾先子卜築講道之所也先子當仁明之際見乙巳禍機筮遯高蹈甞與河西玉峯同遊酬唱而終爲元祐完人盖是亭之遺墟也在於梅雨村右江上不食一堆淑氣爽朗而巖石天設也卉木人功也又有清流明沙暎帶於前奇而絶野而隱故景亦不同而樂亦無窮幽閒窈妙不可俱狀而八景尤美之中亦有群賢之題名宜乎地不忍荒水不忍廢矣亭之東畔數武許有一片倚石石氣蒼古而模刻公之眞像名曰醉巖意其山水之樂得之心而寓之酒而然耶自南而欲下則第有一線徑路凡出入於亭中者皆由乎是而亦有坦路橫在亭下即梅弓兩村樵牧之所嘗徃來處也緣是路而少東自東而復南緣向江干則爰有隕石磅礴陝立俯臨江天依然若神慳鬼秘之物而差南一面平削數尺焉是則新題宋先生及鄭金二公之名也自是而移歩攀崖路轉仰見大書漾碧亭三字懸在層巖絶壁之顚漸入佳境而顧瞻左右則石臺鉤連如棧如屏渾然天成繞在三面而船遊錄刻于其上是則金先生及先子與白玉峯題名也其下別有盤石可坐八九人隱然有盤旋之跡而質凝雲白紋圻烟碧古人所謂夏天床石而眞別一區也若使遊人上來箇中則向江一面洞豁無涯故心曠神怡其於世間榮辱得喪可以俱忘而三百餘年之間漠然徒見山高水清而己惜乎先子之學問節義無所考據而實河西先生之從遊也然則後之登斯者無徒以水石風月揣摩想像必先以學問節義尚論稱停則庶乎其可也世遠亭毀遺址空存故傷今思古以寓繼述之萬一云爾 後孫 鍾悳 謹記 양벽정유허기(漾碧亭遺墟記) 우리 고을에 옛날 부유현(富有縣)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 찾아볼 만한 아름다운 경치가 많았던 까닭에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소강남에는 오직 양벽정(漾碧亭)이 제일인데 곧 우리 선자(先子)가 땅을 가려 정자를 짓고 도를 강(講)하던 곳이다. 선자가 인종(仁宗) 명종(明宗) 때에 을사사화(乙巳士禍)의 기미를 보고 높은 뜻을 갖고 은둔할 곳을 찾았다. 일찍이 하서(河西) 옥봉(玉峯)과 더불어 함께 놀며 수작하고 창화(唱和)하며 마침내 원우완인(元祐完人) 당색(黨色)에 초연한 자 이 되었으니 바로 여기 이 정자의 유허였다. 매우마을 「梅雨村」 오른쪽 가상에 있어 흙무더기 하나도 침식되지 아니하고 맑은 기운은 상쾌한데 비해 바위돌은 천연 그대로이며 초목만은 인공으로 이룬 것이다. 또 맑은 시냇가 밝은 모래가 전망을 가로질러 번뜩이는 광경이 비할 데 없이 기묘하고 야한 듯 은은하니 풍경도 다 같지 않지만 그 즐거움 역시 무궁하다. 그윽하고 한가하며 깊고 묘한 것을 가히 형용할 수 없고 八경이 더욱 아름다운 가운데 또 여러 현인(賢人)의 제명(題名)이 남아 있으니 땅이 차마 거칠지 아니하고 물이 차마 폐하지 아니한다고 한 것이 마땅하도다. 정자의 동편 언덕 얼마 안 되는 거리에 고색(古色)이 창연(蒼然)한 바위가 있는데 공의 진상(眞像)을 모각(模刻)하고 이름을 취암(醉巖)이라 하니 그 산수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그 흥을 술에다 맡겨 보려고 했던 것인가, 남쪽으로 내려가려 하면 이에 한 가닥 지름길이 있으니 무릇 정중에 출입한 자 다 이를 이용하고 또 평탄한 길이 정 아래로 비스듬하게 있으니 곧 매우(梅雨) 궁각(弓角) 두 마을의 초로이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동편으로부터 다시 남으로 강기슭을 따라 가면 떨기진 돌이 널리 덮여 강에 잠긴 하늘에 맞닿은 듯한 모습이 어슴프레하여 신이 아끼고 귀신이 비장(秘藏)한 듯하고 남쪽 한 면(面)이 두어 자 깎아 세운 것 같은데 이는 송 선생 및 정 김두공이 새로 이름을 새긴 곳이다. 이로부터 걸음을 옮겨 비탈진 길을 구불구불 돌아 올라가다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 양벽정이라 크게 쓴 세 글자가 층암절벽의 이마에 달려 있다 점점 아름다운 지경에 들어가 좌우를 돌아본즉 돌대(돌石臺)가 갈고리같이 연하여 사다리 같고 병풍같이 온전한 천작으로 三면에 둘러 있어 그 위에 선유록(船遊錄)이 새겼으니 이는 김 선생 및 선자(先子) 백옥봉(白玉峯)의 제명이다. 그 아래 따로 반석이 있어 가히 八, 九인이 앉을 만하고 은연이 돌아다닌 흔적이 있으며 돌바탕에는 구름이 어려 희고 언덕에는 연기가 문채가 되어 푸르니 옛사람이 이른바 여름 하늘 상석이요, 참으로 아름다운 별천지이다. 만일 노는 사람이 와 보면 강으로 행한 한 면이 가히 없이 통활한 고로 마음이 아득하고 정신이 즐거워 그 세간 영욕득실을 가히 함께 잊어버릴 것인데 三백여 년 사이에 막연히 한갓 산이 높고 물 맑은 것만 볼 따름이었다. 아깝도다! 선자의 학문과 절의를 고거(考據)할 바 없으나 사실인즉 하서(河西) 선생의 종유였다. 그런즉 뒤에 이 정에 오른 자는 한갓 수석 풍월로써 요량하여 상상하지 말고 반드시 학문 절의로써 높이 의론하여 칭송한다면 거의 옳을 것이다. 세대는 멀고 정은 헐어져 남은 터만 속절 없이 있으니 이제를 슬퍼하고 옛을 생각하여 이 글을 쓰니 만에 하나나 계술의 뜻이 될까 한다. 後孫 鍾悳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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